어바웃 타임
어바웃 타임을 열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본 것 같습니다만
2013년도에 개봉한 이 영화를 나는 꽤나 다양한 시간대에서 수차례 보아왔다. 원래 로맨스나 마음 따듯해지는 가족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 영화 특유의 기분 좋은 여운과 귀에 맴도는 OST들 때문이었다.
오늘로 따지자면 다시 본지 9번째는 되었으려나? 특별히 기대되거나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하루가 점차 사라진채 지내다보니 영화를 보면서 감상에 젖은지도 오래되어 언제가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것은 오늘 보는 중간중간 아~ 이런 장면도 있었지 참
이라고 스스로 되뇌이는 순간이 많았다는 것으로 증명했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가족의 행복함과 팀, 메리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더 컸던 기억이 난다. 팀과 메리의 첫 만남, 일 몬도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빗속 결혼식 장면과, 우연히 마주친 여름 날의 크러쉬 샬롯을 마주치고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다짐하는 장면, 이윽고 팀이 침대 옆에서 조용하게 청혼하는 장면 등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내가 나이도 제법 먹은 아저씨가 되어서일까? 혹은 그 사이에도 세상에 치이고 깨달은게 많아서였을까 오늘 느지막한 밤, 영화를 보면서 새롭고 다르게 느껴진 장면들이 유독 기억에 남아 이렇게 글까지 남겨본다.
물론 당연하지만 아래 부분에 풀어낸 내 보따리 타래는 스포일러가 가득하다.
아버지의 결혼식 축사
영화 중반부에 팀은 결혼식 축사를 친구들에게 부탁했는데 꽤 형편없었다. 결국 팀은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는데 자신의 아들을 위해 낯간지럽지만 그만큼의 따듯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아버지들은 세상에 몇이나 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아버지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고 모든 딸들, 아들들은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겠지만. 그만큼 두 부자의 사이가 각별했고 소중하지 않았을까? 미래에 나를 닮은 사고뭉치 아들을 낳더라도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아버지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결혼하는 사람에게 전 항상 한 가지만 충고해 줍니다. 끝엔 우리 모두 다 비슷하다는 거. 모두 늙고 같은 얘기를 수십 번씩 반복하니까요. 하지만 상냥한 사람과 결혼하라는 것. 그리고 팀은 따듯한 마음을 가진 상냥한 사람입니다. 제 인생을 돌아봤을 때 특별히 자랑스러운 점은 없지만 제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팀의 아빠
문득 아빠와 소주 마신지 한 달도 더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치고 들어온다.
어머니식 표현
팀의 아빠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모두들 집으로 모인다. 팀의 좀 어떠냐는 인사에 팀의 엄마가 답한 대답은 절제되면서 너무 아름다운 말로 느껴졌다.
- 왔구나
- 엄마, 좀 어때요?
- 솔직히?
- 솔직히요
- 화가 나 미치겠어. 네 아버지 없는 인생은 정말 관심이 없구나
결혼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정으로 산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표현을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도록 많이 배우고 표현해야 겠다는 울림을 주었다.
행복을 위한 공식
요즘 좀 즐거운 기억을 많이 못찾아서 그랬을까, 좋아하는 장면이지만 또다시 보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팀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행복을 위한 공식
을 알려준다. 일단은 평범한 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내보고, 그 다음에는 최대한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아본다는 공식이다. 핵심은 처음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놓치고 지나갔던 그 시간에만 존재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최대한 느껴보는 것이다. 이 부분과 더불어 영화의 마지막 부분까지가 영화 제목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난 시간 여행에서 마지막 교훈을 얻었다. 아빠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기까지 했다.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그저 내가 이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나는 행복한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 살아있음을 느껴라, 카르페 디엠 등등 온갖 좋은 말은 많지만 이걸 마음 깊이 새겨놓고 실천하고 있는 낭만러들은 한국에서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바쁘고 척박하게 돌아가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인류애 충전할 거리는 점점 줄어드는데 잃을 곳만 늘어난다는 생각조차 들고 있으니 나 역시 낭만이니 추억이니 담 쌓은지 제법 된 것 같다.
추억을 좋아한다고 했던 누군가의 자기소갯글이 떠올랐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모여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취향이 되고, 그 사람 자체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수없이 보았던 이 영화가 낯설게 느껴지고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생겼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이 글을 보거나 영화를 또 다시 볼 나에게 오늘 하루 중 행복했던 순간 하나만 골라와
라는 문장을 선물로 남긴다. 그 행복들이 추억거리가 되고 나중에 이 시간대로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시간 여행으로 남아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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